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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책 나를 키운, 키우는

한권으로 읽는 한국사

by 봄을 기다리는 개구리 2009. 4. 27.

2009.04.28.

 

 

도서관에서 한국사에 대한 책을 고르다가 우연히 펼쳤는데, 아주 많은 사진들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출판사도 휴머니스트....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지만 많은 유적들 유물들에 대한 사진들이 있어서 좋았다.

또한, 기존의 책과 편집이나 논조가 다르다는 느낌을 작지 않게 받았다.

그게 신선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흡족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왕별로 꼼꼼히 적은 다른 책과 달리

선택과 집중을 하여 과감한 생략 또는 반대로 자세한 서술이 돋보였다.

 

아래와 같은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쇼킹한 적나라한 서술도 있었고.... 

 

쟁점 8 조선시대 서원의 역할

 

전략. 집권 노론의 당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충청도 유림의 여론을 좌우하는 거점이었던 화양동 서원의 경우, 전국에 걸쳐 광대한 수세지를 운영했으며, 제사에 쓸 비용인 제수전(祭需錢)을 빙자해 각 고을에 '화양묵패'를 보냈는데, 이는 관령보다 위에 있어 이를 받은 백성들은 논밭을 팔아서라도 납부해야 했다. 또 제사 때 유생을 공궤한다는 명목으로 복주호(福酒戶)와 복주촌(福酒村)을 운영하기도 했다. 양민을 강제로 피역시키면서 면제의 대가로 돈을 거두어 들였고 이를 거부하는 백성들은 서원으로 잡아와 사형(私刑)을 가하는 등 온갖 비리를 자행했다. 후략.

 

지금과 비슷한 점이 있지 않나?

 

조선 후기 사회와 민중의 저항

전략. 임진왜란 이후 계급간의 모순이 급격히 심화되자, 천민은 자기방위를 위해 비밀결사를 만들었다. 인조 무렵 남원을 중심으로 전라도 지방에 급속히 확산되었던 살인계의 움직임이 대표적인 것이다. 양반층은 이들의 보복공격에 대비해 동래로부터 일본총을 수입하여 자기방어에 힘썼고, 양반이 살해된 경우에도 살인계원의 보복이 두려워 관청에 고발조차 할 수 없었다.

 또한, 1629년 서북 지방(평안도, 황해도)의 평민 유랑민과 천민 유랑민이 중심이 된 명화천(明火賤)집단은 한성을 공략했다. 그들은 양반 없는 평등한 사회를 실현할 14개조의 사회 개혁안을 만들고, 3정승6판서를 양인과 노비가 담당하는 [개국대전]을 작성했다. 14개조의 개혁안 가운데 주요한 것을 들어보면, 첫째 노비의 양인화, 둘째 관방(官房)권세가의 농장 몰수와 상급(償給), 셋째 원부세 외의 각종 잡역 금지, 넷째 노비노동을 대신할 고공제(雇工制)의 실시, 다섯째 유학, 교생, 무학(武學) 등 이른바 유한 양반들에게 중역을 부과함으로써 양반의 양인화를 실현하는 것 등이 있다.

중략. 하층 민중의 저항은 17세기 말엽에도 계속되었다. 1684년 숙종10년 천민층의 비밀결사인 향도계를 중심으로 한 살주계, 검계의 움직임이 그것이다. 그들의 강령은 첫째 양반을 살육할 것, 둘째 양반의 부녀자를 겁탈할 것, 셋째 양반의 재물을 탈취할 것 등이었다. 이들 조직은 한성 내의 가노(家奴)가 중심이 된 것으로, 17세기 초 호남 지방의 살인계와도 상통하는 것이었다.

 

이런 걸 보면, 역설적이게도.... 

그 옛날 우리나라에서 상층계급에서 하층계급을 얼마나 가혹하게 억압했나 여실히 알 수 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의 후예이다.

가능성은 적으나,

과거 상층계급이었는데 자손이 내려오면서 이렇게 되었을 수도 있고...

분명, 생물적 적자생존이 적용되었을 터이나,

하층계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질게 또는 운 좋게 대를 이어 왔을 수도 있다. 

 

억압과 압박으로 점철된 역사. 이런 걸 보면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자랑스럽지는 않다.

우리만 그런 시대를 거쳐온 것은 아니란 것도 잘 알지만.

군사정권의 피교육의 때가 내 살과 함께 벗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불쾌한 느낌을 가진다.

 

어쨌든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좋은 책이었다.

 

근데 우리 모두 공동으로 보는 도서관의 책에 낙서 좀 하지마!!!

줄 그으면서 공부하려면 니 돈으로 책사서 하던지...라는 말을 이 좋은 책에 낙서한 사람에게 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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