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23.
그를 택하지 않았으니까 하는 단순한 마음이 성급히 들었으나,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를 택한 어리석은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가슴을 휘젓고 있다.
지금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망조의 모습이 보이고,
결국 그 국민들 중 하나인 나와 가족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
오래 전 나라가 위태로웠을 때, 장지연선생이 신문에 썼던 논설이 생각난다....
지난 번 이등 후작이 내한했을 때에 어리석은 우리 인민들은 서로 말하기를,
후작은 평소 "동양 삼국의 정족 안녕을 주선하겠노라 자처하던 사람인지라
오늘 내한함이 필경은 우리 나라의 독립을 공고히 부식케 할 방책을 권고키 위한 것이리라."
하여 인천항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관민상하가 환영하여 마지 않았다.
그러나 천하 일 가운데 예측키 어려운 일도 많도다.
천만 꿈밖에 5조약이 어찌하여 제출되었는가.
이 조약은 비단 우리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이 분열을 빚어낼 조짐인 즉, 그렇다면 이등후작의 본뜻이 어디에 있었던가?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대황제 폐하의 성의가 강경하여 거절하기를 마다 하지 않았으니
조약이 성립되지 않은 것인 줄 이등후작 스스로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도다.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던 것이다.
아. 4천년의 강토와 5백년의 사직을 남에게 들어 바치고,
2천만 생령들로 하여금 남의 노예 되게 하였으니,
저 개돼지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제순과 각 대신들이야 깊이 꾸짖을 것도 없다.
하지만 명색이 참정대신이란 자는 정부의 수석임에도
단지 부자로써 책임을 면하여 이름거리나 장만하려 했더라 말이냐.
김청음처럼 통곡하여 문서를 찢지도 못했고, 정동계처럼 배 가르지도 못해
그저 살아남고자 했으니 그 무슨 면목으로 강경하신 황제 폐하를 뵈올 것이며,
그 무슨 면목으로 2천만 동포와 얼굴을 맞댈 것인가.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 기자 이래 4천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1905년 11월 18일, 일본과 우리나라사이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에 분노한 위암 장지연선생이 일제의 감시와 검열을 피해
황성신문에 실었던 신문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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